속초고성양양의 역사

속초는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였다.-1

속초애인 2024. 6. 12. 20:06

4. 조선시대

○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동해안에 수군기지 6곳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양양북쪽에 속초포가 있다고 했는데, ‘속초라는 지명이 나타난 현존하는 최초의 기록이다.

 

향성사의 후신인 선정사는 900여 년간 그 자리를 지켜오다가 조선시대인 인조 20(1642)에 화재가 나서 완전히 소실되고 만다. 이에 인조 22(1644)에 영서, 혜원, 연옥 등이 선정사 아래쪽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1649년에 완성하였는데, 이름을 신흥사(神興寺)’라고 하였다.

 

1530년에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청초호가 쌍성호(雙城湖)’라고 기록되어 있다. 1757년에 왼성된 여지도서에는 청초호가 쌍성호(雙成湖)’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청초호는 속사호, 속진호, 술랑포, 쌍성호, 논뫼호 등 다양하게 불렸는데, 청초호 호수위에 투영되는 설악산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조선 영조 때 화가 김홍도가 영랑호를 그린 산수화를 남겼다.

 

1609(광해군 1) 강원도 춘천, 원주, 강릉, 건성, 양양 등지에 UFO가 출현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양양부에 825일 미시(未時, 13~15시 사이)에 김문위(金文緯)의 집 뜰 가운데 처마 아래의 땅 위에서 갑자기 세숫대야처럼 생긴 둥글고 빛나는 것이 나타나, 처음에는 땅에 내릴 듯 하더니 곧 1장 정도 굽어 올라갔는데, 마치 어떤 기운이 공중에 뜨는 것 같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인조(1595~1647)대 신흥사 승려인 설정스님(說淨)과 다섯살 동자와 관련된 설화로 통해 오세암이라는 절이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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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7년에 완성된 여지도서에는 속초지역의 마을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소천면(所川面)에 속진리(175), 속초리(281), 논산리(97), 부월포리(86)가 있었고, 도문면(道門面)에는 장항리(승려 49), 도문리(192), 내물치리(52), 대포리(104), 외옹치리(238)가 있다.

 

1675년 숙종때 조정회의를 거쳐 함경도 덕원에서 유배 중인 우암 송시열을 경상도 장기로 이배(유배지를 옮김)할 것을 결정했는데, 때는 525일 우암의 유배행렬이 속진, 속초를 거쳐 외옹치 고개로 넘어 들었다. 한참을 가던 중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암의 일행은 비를 피하기 위해 내물치촌[(內勿淄村)의 정립이라는 사람 집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다. 정립의 집 기둥에 삼전시호인개신(三傳市虎人皆信), 일철군봉부역의(一掇裙蜂父亦疑), 세상공명간목안(世上功名看木雁), 좌중담소신상구(座中談笑愼桑龜)라는 글귀가 적혀있는데, 이 글귀에 대해 송자대전(송시열이 지은 글 모음집)에서는 ()의 말에 의하면, 지난해 5월에 승려도 아니고 세속 사람도 아니며 선비 같기도 하고 천인(賤人) 같기도 한 어떤 사람이 이 글씨를 써 두고 가면서 내년 5월에 다시 오겠다고 하였는데, 오늘 귀하신 걸음이 기약에 맞춰 와서 보시게 되니 이상스럽다고 하였네.

 

그 필치도 매우 기이하였지만 위 구절은 위에서 차례로 내려쓰고 아래 구절은 밑에서 위로 거꾸로 써 간 것도 알 수 없는 것이었네. 다만, 아래 구절의 이른바 상구(桑龜)는 바로 오늘날 마땅히 가슴에 새겨 담아야 할 것이었네. 북쪽에 있을 때 서울 친구들에게서 온 편지를 두 번이나 구동(狗洞-윤휴의 무리들)이 가로채 갔고 그의 심복들이 안팎에 두루 깔려 있으니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은 그 시()를 허암(虛菴) 정희량(鄭希良)이 유자광(柳子光)이 득세한 때에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네.”하였다.

 

속초시지에 의하면 내물치리(內勿淄里)는 조선조 때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왔다가 폭우로 머물게 되면서 '물에 잠긴 마을'이라는 뜻으로 '물치(勿淄)'라고 했다고 전다.송자대전에는 물치(勿緇)’로 기록되어 있다.

영랑호반 암석에 영랑호(永朗湖) 3글자가 암각되어 있는데, 송시열이 쓴 글씨이다.

 

5. 일제강점기

1914년 일본은 속초지역의 2개면인 도문면과 소천면을 도천면(道川面)으로 통합하였다.

 

191945일 물치장날을 기하여 도문리, 대포리, 부월리와 논산리 등 사람들이 면사무소(. 중도문 노인회관)에서 모여, 대포리에 있던 일본 순사주재소앞까지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는데, 이에 놀란 일본 순사들은 가족들을 배에 태워 바다에 띄우고는 만세만 부르고 돌아가 달라하며 애원하였다.

 

1932년부터 청초호를 전쟁물자 조달을 위한 항구로 개발하기 위하여 지금의 갯배가 운영되는 곳을 확장하고 방파제를 건설하였다.

 

1937121일 양양~원산간 동해북부선이 개통되었다.

 

193771도천면속초면으로 개칭하고 속초리 속초 1~4 분리하여 구제(區制)’를 실시하였다.

 

194111월 속초시장 뒤편 7만여평의 부지에 속초공설운동장이 건립되었다.

 

1942101부령(府令) 104호로 속초면속초읍이 되었다.